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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엄마/육아서

가르치고 싶은 엄마 놀고 싶은 아이 <초등기>

Chapter 2 초등기, 아이 공부의 본색

 

아이에게 초등기 공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중학교 공부의 기초가 되는 것은 당연하고 그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있다.

초등기는 아이들이 공부로 하는 상호작용을 처음 시작하는 때다. 유아기에 아이와 놀이를 통해 상호작용을 했다면, 초등기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많은 사람과 공부로 상호작용을 한다. "네가 써, 이건 내가 붙일게.", "지우개 있니?" "내가 빌려줄게" 등 또래들과 하는 상호작용도 전부 학습과 관련 있다.

집에 와서도 부모와 많은 시간을 학습이라는 것을 통해 상호작용을 한다. 교사와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아이에게 학습은 별다른 의미가 없으며 그저 상호작용의 시작일 뿐이다. 그것이 잘되면 편안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편하다. 초등기 공부는 자기 효능감의 시작으로 아무리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라도 자기 나이에 해야 하는 기본적인 것을 못하면 자존감과 자신감이 떨어진다. 때문에 공부를 너무 못하는 것도 문제다.

아이가 공부를 잘함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바라보는 학습 태도로 인해 아이의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부모 입장에서 아이가 잘하는 것은 당연하고, 못하는 것만 지적해도 그럴 수 있다. 초등기는 공부라는 과정을 통해 '이렇게 해낼 수 있네', '내가 쓴 답이 맞네', '이렇게 하는 공부 방식이 맞네' 같은 경험을 하면서 자기 효능감과 자기 확신감을 발달시키는 시기다. 

 

부모는 초등기 아이와 공부라는 주제를 놓고 비난과 같은 부정적인 상호작용을 해서는 안된다. 화를 내서도 안된다. 아무리 그 안에 사랑이 깔려 있어도 비난을 하거나 화를 낼 바에는 차라리 안 가르치는 게 낫다. 부모가 화를 내면서 가르치면 아이는 공부에 대한 기본 인식이 굉장히 나빠지고, 좋지 않은 공부 태도를 가지게 된다.


공부는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유용한 도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때 아이가 갖게 되는 도구의 질은 부모의 가르치는 능력이 아니라 인내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초등 1학년 숙제 지도하는 법

1. 억지로라도 하면 기분 좋게 "잘했어!"라고 칭찬해라

2. 숙제에 대한 평가에 부모는 연연하지 마라

3. 숙제 먼저 하고 놀아야 하는 것이 불면의 진리는 아니다

 

 

부모가 지나치게 '100점, 100점' 하면 아이는 점수만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제 막 공부에 맛을 들이는 어린 나이에 '시험 스트레스'가 생기고 만다. 아이에게 시험은 내가 뭘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하는 것이며, 시험을 안 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래도 아이가 시험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 이유는 부모가 점수에 연연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점수에 연연하는 것을 아이가 배웠기 때문에, 시험이 아니라 점수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배운 것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체계화하고 지식화하는 기전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것을 빨리 깨닫는 아이는 학습 능력이 뛰어난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아이가 그것을 빨리 깨닫기 위해서는 학원에 가거나 엄마가 끼고 가르치는 것보다 30분이라도 혼자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중요하다. 아이가 어려서 혼자 공부를 하게 하는 것이 불안하다면 조용히 지켜본다. 아이가 뭔가 하려고 할 때, '그렇게 하면 안되지. 그러면 안돼' 하면서 절대 개입하면 안된다. 자꾸 끼어들면 아이가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다.

 

 

정리를 한다는 것은 조직화하는 능력이다. 시각 · 지각적인 생각을 체계적이고 순차적으로 발달시켜야만 정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릴수록 정리를 하지 못한다. 그리고 정리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기억력도 좋고 문제해결력도 좋은 편이다.

정리하는 것 또한 능력이다. 나는 이를 '정리력'이라고 한다. 정리력이라는 것은 공간지각적인 생각을 체계화시키는 데 의미가 있기 때문에 공부와 직격된다. 정리력이 좋은 아이는 공책 필기도 알아보기 쉽게 일목요연하게 한다. 정리력이 낮은 아이의 공책 필기는 오늘 배운 내용이 뭔지 알아볼 수가 없다. 정리력이 좋은 아이는 책을 읽아도 대주제, 소주제 등을 머릿속에 정리한다. 정리력이 낮은 아이는 책을 읽아도 무슨 내용인지 뒤죽박죽 섞여 정리가 되지 않는다.

어릴 때 아이의 정리력을 키워주는 것은 공부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부모들이 "너는 공부만 해. 엄마가 다 치워줄게" 하는 것은 아이의 두뇌 발달과 공부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안된다. 정리력은 일상에서 자주 연습시켜 키워주어야 한다. 

 

정리 안 하면 버리겠다고 협박을 하고 실제로 버리기도 한다. 공포를 유발해서 아이를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고쳐지는 아이도 있지만, 아이 마음에는 '화'가 생긴다. 부모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런 방법보다는 일주일에 한 번 온 가족이 다 함께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훨씬 교육적이다. 주말 오전에 '정리 시간'을 갖는다. 각자 자신의 영역을 한 시간 정도 치우고 나서 다시 모인다. 이때 정리하지 못한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한 시간 동안 그 주의 정리는 딱 끝낸다. 아이가 어릴수록 좁은 범위를 정해줘야 하는데, 그래야만 아이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중압감 없이 정리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문제를 잘못 읽고, 부호를 빠뜨리고 사소한 실수가 잦아요

문제를 풀 때 실수가 많은 아이 중에는 성급한 아이들도 있다. 마음만 앞서서 첫 줄을 다 읽지도 않고 두 번째 줄을 읽는다. 이렇게 성급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후다닥 해치우로 놀고 싶은 경우와 약간 불안하고 조급해져서 성급해지는 경우가 있다. 특히 부호 등을 빼먹는 실수를 하는 아이들은 '불안'으로 당황해서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부주의한 아이들은 일상에서 정확하고 꼼꼼하게 처리하는 것을 자꾸 연습시켜야 한다. 그러나 실수를 줄인다고 더 많은 문제를 풀어보게 하는 것은 공부를 지긋지긋하게 만들 뿐, 적절한 방법은 아니다. 이런 아이들은 일상생활에서 차근차근 꼼꼼하게 생활하는 태도를 갖추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부모는 부주의한 아이한테는 되도록 간단하고 정확하게 지시한다. 또 아이 스스로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부모들은 책 읽는 습관을 들인다며 '하루에 5권 읽기'식으로 정해놓고 아이한테 읽도록 시킨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유아기에서 말했듯이 자기 전에 규칙적으로 책을 읽어주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다 보면 책으로 정보를 얻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은 아이가 궁금해하는 것을 책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아이가 뉴스를 보다 "황사가 뭐예요?"라고 물으면, "황사? 같이 찾아볼까?" 하면서 책을 찾아 설명해준다. 아이가 궁금해하는 것을 책을 통해 습득할 수 있다는 경험을 많이 하게 한다. 

 

 

아이는 부모에게 사랑받으려고 공부한다

초등기 아이를 공부시키려면, 기본이 부모의 사랑이다. 혼내고 지적하고 비난하기보다 칭찬하고 사랑해준다. 그래야 공부가 지루하고 힘들어도 아이는 참고 한다. 아이는 자신의 능력이 되는 한 부모의 뜻을 따르고 싶어한다.

아이가 공부를 잘 못하거나 공부를 시키는 것이 어렵다면, 뭔가 힘든 이유가 있을 것이다. 노력을 해도 양이 너무 많다거나 열심히 했는데 부모가 사랑을 주지 않는다든지, 부모의 사랑에 대한 믿음에 이상이 생겼을 수도 있다. 그런 것을 점검해봐야 한다. 

 

초등기 공부에서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아직은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라는 사실이다.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내고, 좋은 상호작용을 많이 해서 부모의 사랑을 가슴 깊이 심어줘야 한다. 그런 믿음은 심어주지 않고, 열의만 넘쳐서 하는 공부 지도는 공부 때문에 부모가 나를 미워한다는 생각만 심어준다. 초등학교 때 심어진 이 생각은 단단한 틀이 되어 부모와 나누는 대화의 90% 이상이 공부가 되는 중고등학교 때에는 공부에 대한 이야기만 해도 감정적 자극이 되어 공부 자체를 미워하게 된다.

 

 

아이가 어떤 실수를 하거나 미숙함을 보이면 그것을 탓하지 말고, 그럴 때는 누구에게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가르친다. 아이가 공부를 통해서 배우는 것은 어떤 문제의 지식적인 답이 아니라 크게 보면 문제해결 방식이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제법 했던 사람도 그쪽 분야를 전공하지 않으면 그 지식은 크면 다 잊어버린다. 학습을 통해 아이가 배워야 하는 것은 생각하는 능력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등이다. 초등기에 이런 것을 가르치는 것이 공부에 그다지 효과가 없어 보이지만, 그것이 공부의 본질이라 상급 학교로 올라갈수록 공부를 하는 데 힘이 된다.

 

'자아 탄성력', 결국 공부의 힘이다

자아 탄성력은 굉장히 중요한 자아의 기능이다. 부모가 아이를 키울 때 여기에 역점을 두면,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 자아 탄성력이란, 사람이 어떤 고비나 위기에 처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좌절하고 괴로울 때, 그런 것이 상처가 되지 않게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내면의 건강한 힘을 동원해서 잘 감당해내는 힘이다. 이것이 떨어지면 학력(공부하는 능력)과 무관하게 문제가 생긴다. 결국은 자존감하고도 연결된다. 

자아 탄성력은 쉽게 말하면, 자기 스스로 자신을 격려하면서 회복해나가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야 이다음에 아이가 공부를 잘할 수 있다. 그래야 시험 성적이 나쁘거나 속상해도 툭툭 털고 '다시 해보자'하는 마음을 먹을 수 있다.

양육에서 자아 탄성력을 키워주려면, 아이를 존중하면서 아이가 감당해내는 과정을 부모가 잘 지켜봐야 한다. 많은 부모가 아이가 감당해내기까지 같이 가지 못한다. 아이가 감당해내기 전에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 안쓰러워서 허용을 해주거나 아이의 불편을 없애버린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초조해서 잔소리를 하거나 화를 낸다. 아이가 그 과정을 이겨내도록 편안하고 안전하게 같이 가주지 못한다.

아이가 내일 시험이라서 공부를 하는데 졸음이 온다. 그런데 아직 공부해야할 양이 많이 남아 있다. 그 감정이 불편한 아이는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이때 부모는 "그러게 미리미리 좀 하지. 너 어떻게 하려고 해? 것 봐. 아까 다 할 수 있다고 하더니 꼴 좋다"라고 하면서 화를 낸다. 아이가 감정적으로 잘 다뤄내지 못할 때는, "네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봐. 조금만 더 할 수 있겠니? 졸리니?" 라고 물어봐서 아이가 "도저히 못하겠어요"라고 말하면, "그래, 그럼 자. 자는데, 내일부터는 이 시간이면 네가 졸리니까 조금 일찍 와서 하자. 놀고 와서 밤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안되잖아. 그러니까 내일부터는 그렇게 하자. 얼른 자" 하고 말하고 재운다.

이렇게 아이가 스스로 공부하는 방식을 찾아가도록 도와준다. 아이가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도 있다. 부모는 아이가 쓰러지지 않게 안전하게 지켜주면서 같이 가줘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자아 탄성력이 떨어지는 아이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자아 탄성력이 좋은 아이는 울다가도 부모가 "네가 할 수 있는 최선만 하면 돼. 많이 졸리니? 더 할 수 있겠어?"라고 물어보면, "조금만 더 해볼게요. 더 졸리면 잘게요"라고 대응한다.

 

 

아이를 좀 놔둬라. 초등기는 시행착오기이자 연습기다

초등기에는 아이를 좀 놔두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중고등학교 공부의 밑바탕이 된다. 아이를 내버려둬야 아이가 실패와 실수를 경험한다. 초등기 부모가 아이를 잡고 있으면 지금은 결과가 만족스러울 수 있다. 학교에서 인정을 받는 것 처럼 보이고 성적도 상위권일 수 있다. 부모가 꽉 잡으면 잡을수록 아이의 성적이 확 오를 수 있다. 그래서 아이가 혼자 해보게 하기보다 배워야 할 것, 배우는 방법, 배워야 할 분량 등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고 지도한다. 그런데 아이를 이렇게 키워서 결과가 좋은 것은 딱 이때뿐이다. 

초등기 때는 부모가 아이를 놓는 연습을 해야 하고, 아이는 부모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면서 혼자 해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물론 혼자 하게 했을 경우 부모가 원하는 성취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속도도 더디고 결과도 부모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 혼자 해보았을 때 아이나 부모가 성취에서 받을 타격이 가장 적을 때가 초등기다. 

부모는 늘 결과가 좋기를 바라기 때문에 조급하다. 공부를 길게 봐야 한다. 어떤 시기는 결과가 좋지 않아도 그 과정을 잘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부모들은 그것이 두려워서 항상 조급하고 초조하다. 초등기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서 습관 정도다. 독서 습관을 갖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함께 서점에 가서 아이가 직접 책을 고르게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는 당장 결과가 좋지 않아도 조급하고 초조해서는 안된다. 하루아침에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해서도 안된다. 천천히 느긋하게 아이가 시행착오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면서 지도한다. 어떤 습관은 몇 년이 걸릴수도 있고, 어떤 행동은 그것을 고치는 데 1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부모는 그것을 묵묵히 지켜봐야 한다.

 

 

아이의 모든 문제는 공부로 드러난다

멀쩡한 부모 밑에서 멀쩡하게 잘 자라던 아이가 공부를 안 하거나 못하는 이유는 더 일찍, 더 많이, 더 제대로 가르치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어떻게 하면 잘 키울지 치열하게 고민한 부모일수록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부모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하려는 사람일수록 이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그 과정에서 부모가 아이를 잘못 다루고, 부모와 아이의 사이가 나빠진다. 아이는 부모를 신뢰하지 않게 되고, 부모에 대한 믿음이 없어지며, 부모를 사랑하지도 않게 된다. 부모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모의 지시가 안 먹힌다. 지시가 안 먹히는 것으로 생겨난 결과물이 바로 공부 문제다.

 

공부는 100% 부모와 아이 갈등이 원인이다. 아니 공부가 원인이라기보다 마지막 현상은 모두 공부로 드러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공부로 인해 문제가 발견된다고 봐야 한다. 초중고 학생의 모든 문제, 자기 자신의 문제, 부모와의 문제, 어릴 때 부모로부터 안정적인 양육을 받지 못해 생겨나는 기본적인 존재로서의 문제, 대인 관계로서의 문제 등 거의 대부분은 학교에 다니는 동안 공부로 드러난다. 아이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 공부이고, 아이의 직업이 학생이라서 그렇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이 문제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공부를 아주 뛰어나게 잘하지 못해도 부모와 별다른 갈등이 없으면 건강하다. 하지만 잘하던 아이가 갑자기 성적이 떨어지거나 눈에 띄게 공부를 안 한다면 그것은 문제다. 공부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성적이 평균 정도이고,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교에서 말썽도 없고, 숙제를 안 하는 문제로 부모와 갈등도 없고, 학원에 시간 맞춰 잘 가고, 시험 때가 되면 성적이 우수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면 이 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학업 성취도로 접근하면 100% 실패한다

공부는 부모와의 좋은 정서적인 관계, 공부를 대하는 자세나 태도 등이 갖춰져야 잘할 수 있다. 부모와 아이의 정서적인 관계가 좋거나 아이가 공부를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와 태도를 가지려면, 부모가 아이에게 공부를 지도할 때 공부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아이가 좀 더 인간다워지고 행복해지는 것, 그것에 적합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방법 또한 인간다운 것인지도 점검해야 한다. 부모가 아이를 가르치는 방법 또한 아이에게는 공부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진다. 그 방법이 뭐든 부모 위주로 잔소리하고, 윽박지르고, 화내고, 협박하는 것이라면 아이는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다.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인간다워지라고 가르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 부모들은 자기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나는 어떤 정의를 가지고 아이를 공부시키고 있는가? 이런 큰 틀은 생각하지 않고 학업 성취도로만 공부에 접근하면, 결국 정서적인 관계가 망가지고 아이가 공부를 대하는 자세나 태도에도 큰 문제가 생긴다. 그렇게 되면 학업 성취가 높고 낮고를 떠나 아이가 아예 손에서 공부를 놓는다.

부모나 아이가 공부하면 떠오르는 것은 성적, 학업 성취도, 국제중, 특목고, 대학 진학 정도다. 하지만 공부를 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인간다워지고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할 때, 아이가 공부를 통해 얻어야 하는 것은 자율성, 독립성, 문제해결력 등이다. 또한 이것을 갖춰야 아이가 공부를 잘할 수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키워주어야 할 것도 자율성, 독립성, 문제해결력 등이다. 

부모가 모르는 것을 설명해주고, 대신 문제를 풀어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직접 공부를 가르치기는 어렵다. 따라서 전문 과외교사나 학원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지식을 전달하고 문제 풀이는 가르쳐주지만 자율성, 독립성, 문제해결력은 길러주지 않는다. 부모는 학업 성취도에 목표를 두고 아이를 지도하기보다 양육 상황에서 공부에 필요한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훨씬 더 필요하다.

 

아이의 공부에 불만족스러울 때, 다시 한번 내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 안에 아이의 인생과 무관하게 내 욕심은 없는지 생각해보자. 내 아이가 흔히 말하는 '엄친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없는지, 아이 입장보다는 내 입장이 우선은 아닌지 부모의 마음을 좀 들여다보자. 지금 아이가 건강하고 잘 먹고, 잘 자고, 또래와도 원만하게 잘 지내고, 공부도 평균 정도라면 아이 입장에서는 그것이 최선이고 최고다. 요즘은 이만큼 해내기도 참 어렵다.

공부와 양육의 목적은 같다. 공부의 목적은 두뇌를 발달시키고, 삶을 살아가는 데 바람직한 자세와 태도를 갖춰 자신의 인생을 독립적으로 헤쳐나가기 위함이다. 양육의 목적 또한 튼튼하고 따뜻하고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키워서 아이 스스로 행복하게 잘 살아가기 위함이다. 그런데 아이 공부에 대해 자꾸만 조급해지는 이 마음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구의 것인가?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공부에 대한 어떤 정의도 갖지 않았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다루어 나갈지에 대한 생각은 대부분 부모가 만들어준 것이다. 지루하고 힘들지만 꾸준히 해나가야 하는 당연한 일로 생각할지, 가장 사랑하는 부모와 나의 사이를 갈라놓는 하기 싫은 것으로 생각할지는 부모의 양육에 대한 가치관, 아이 공부에 대한 가치관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을 산 건 아이가 두 살 때였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유아기 공부에 대해 이야기한다.

당시 나는 후반부에 나오는 초등기 공부는 거의 읽지 않았다.

이제 두 살이 된 아이의 엄마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 같았기 때문이었겠지.

유아기에는 외국어 공부는 10살 즈음부터 시키는 게 뇌 발달상 좋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나는 5살 때 아이를 바로 영유에 보냈다. 

육아서라는 건 그런 것 같다.

읽을 때는 책에 나온 모든 얘기들이 다 맞는 것 같고, 책에 나온 대로 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현실에서의 선택은 취사의 문제다.

초등기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도 이 책에 나온 대로 아이를 키우고 싶다. 10살까지는 많이 놀게 해주고 싶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해줄 수 있을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학원을 하루에 1개 이상 가지 않으면 된다. 

그러려면 예체능을 다 끊던가 영어학원을 그만둬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아이가 컸을 때, 뒤늦게 다른 친구들을 따라잡으려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냥 실컷 놀게 할 수도 없고, 빡빡하게 공부만 시킬 수도 없다. 그래서 엄마들은 늘 고민이다.

엄마들도 안다. 아이에게도 놀 시간, 멍 때릴 시간, 책 읽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때문에 그 시간을 어떻게 쪼개서 만들어줘야 할지를 늘 고민한다.

아이를 공부시키는 것에 있어서 내 욕심이 있는지, 엄친아를 만들고 싶은 건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부모라면 당연한 욕심이 아닐까? 욕심이라기보다는 바람이겠지.

하지만 그런 이유로 아이를 공부시키는 부모가 더 많을까

아니면 그저 내 아이가 커서 제대로 밥벌이하고 살길 바라는 마음에 공부시키는 부모가 더 많을까.

부모도 아이가 안쓰럽다.

화내지 말고 인내하며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