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읽는 엄마/육아서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

책 구입 시기: 2013년 12월

나는 원래 불안감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그 불안감이 더욱 심해졌다.

책 제목대로 나는 불안했고, 남편은 무관심해 보였다.

책에서 오은영 박사는 전문가인 자신조차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매 순간순간이 다 불안하고 두렵고 걱정되는 일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내 손에 달려있는데, 불안하고 걱정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불안함의 원인도 알 수 있었지만, 남편의 불안함과 그 불안함이 무관심의 형식으로 표출된다는 것을 알고 남편의 행동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그때만큼 불안하지는 않다. 아마도 엄마 경력이 쌓이면서 나도 조금은 단단해진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지금은 또 지금대로 그때와는 다른 불안이 있다.

늘 불안과 걱정은 나를 따라다닌다. 아이가 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은듯하다.

다만 이제는 그 불안에 질질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불안의 원인을 알고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큰 도움이 되어준다.

육아와 교육에 지치고 불안하다면, 왠지 무관심하기만 한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 가득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남편은 왜 저렇게 반응할까? 아이의 진짜 속마음은 뭘까? 내가 지금 이토록 불안하고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책에는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법한 다양한 상황별 원인과 대책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옆집 엄마와 수다를 떨기보다는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죄책감, 미안함, 욕심이 커질수록 엄마는 걱정이 더 많아지고 더욱 불안해진다.

 

이러한 욕심은 모두 자기 확신이 없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자기 마음속에 '이 정도면 됐어. 충분해'가 안 되기 때문이다.

 

 

 

40대에서 50대 초반의 엄마들은 육아를 어려워하지 않았다. 살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남편이 참견하지 않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는 세대이다. 이들은 육아나 살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돈만 많이 벌어오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30대 엄마들은 보살핌을 너무 많이 받고 자란 세대라 혼자 육아를 하거나 살림하는 것을 버거워한다. 40대에서 50대 초반의 엄마들은 어린 시절, 엄마가 바쁘면 자기가 도시락도 싸고 동생도 돌보았지만, 30대 엄마들은 오직 보살핌만 받아봤지 스스로 해본 적이 없다. 이들은 자녀교육서도 보고 부모교육방송도 보면서 '좋은 엄마가 되어야지'라고 매일 다짐하지만, 막상 하려고 하면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 아이도 무거워서 잘 안지 못하는 엄마들도 있다. 밖으로 나가면 온통 명품 육아, 명품 육아하는데 이들 남편의 월급으로는 그런 것을 감당할 수 없다. 좋은 대학은 나왔지만, 수입은 기대치에 훨씬 못 미치니 30대 엄마들은 결혼 전보다 풍족하지 못한 자신의 상황에 화가 나고 다른 집 아이의 먹는 것, 입는 것, 배우는 것이 우리 아이보다 나은 것 같으면 질투심에 불타오른다. 이러한 질투심은 30대 엄마가 갖고 있는 불안의 원인이 된다. -P.56


나는 40대 엄마지만 30대 엄마들과 함께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래서 이 부분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아마 여기에서 말하는 40대 50대 엄마들은 지금 고등학생 이상의 자녀를 둔 엄마들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늦은 나이에 출산을 했고 40대이지만 30대 엄마들의 틈에 껴있다. 물론 내 주위에는 나처럼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은 아이 친구 엄마들도 있다. 그들도 나와 같은 40대이고, 그들과 나는 확실히 30대의 젊은 엄마들과는 어딘지 모르게 다르다. 나 역시 어린 시절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고, 오빠 라면도 끓여주고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책에 나온 것처럼 살림은 내가 할 테니 남편은 돈만 잘 벌어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나는 결혼 전에도 그리 풍족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삶에 큰 불만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아이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을 주고 싶은 욕심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욕심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불안하다.

누군가 더 좋은 학군지로 이사를 가면 내 아이만 뒤쳐질것 같은 생각에 우울하고 불안해진다.

이것 역시 질투의 감정일까? 


부모의 불안이 아이의 불안이 된다.

많은 부모가 불안하면 아이한테 화를 낸다. 자신의 불안의 원인이 아이가 아님에도 부모는 내 아이에게 화를 낸다. 아이에게 화를 내는 부모의 속마음은 세력으로 따지자면 가장 약한 존재라 만만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는 내가 없으면 못살기 때문에 내가 화를 내도 금방 용서할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모의 예상대로 아이는 부모가 악다구니를 쓰듯 소리치고 패대기를 쳐도 "엄마"를 부르며 다시 달려온다. 그 고마움을 모르는 부모가 너무나 많다. 아이가 스스로에게는 무섭고 공포스럽고 혼란스러웠던 순간을 너무 쉽게 용서해주었다는 것을 모른다. 아이의 마음속에 상처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오히려 금방 용서해주니까 아이를 쉬운 존재로 생각한다. 부모는 자기 마음에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간직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가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오해하지 않을 거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아이 앞에서 쉽게 화를 낸다. 문제는 아이가 사춘기 때 발생한다. 아이 마음속 상처가 커질 대로 커지면 아이는 더 이상 부모를 용서라지 않는다. 힘의 균형이 비슷할 때는 상대에게 화가 나면 맞서 싸우거나 안 보면 된다. 그런데 자식은 부모와 힘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아이는 마음속으로 화가 나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고, 돌아서서 헤어질 수도 없다. 그래서 '부모의 화'는 아이에게 와 '아이의 분노'가 된다. 부모의 화보다 더 큰 화가 쌓이는 것이다.

아이의 마음은 존중받아야 한다. 특히 부모에게는 반드시 존중받아야 한다. 아이를 존중하는 부모의 마음은 아이가 가질 사회성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 아이를 가장 믿고 사랑해야 하는 사람은 부모이다. 아이는 그 사람과 관계가 편해야 타인과의 관계도 잘 유지해 나갈 수 있다. 관계가 편치 않으면 아이는 세상을 불신하고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으로 자란다. -p.78

 

 

불안이 잘 처리가 안 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세상에 대해 불안하다. 조금만 변해도 불안해하고 조금만 큰일이 생겨도 불안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불신이 많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좀처럼 믿지 못한다. 심지어 친절하게 대해줘도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라고 의심하고 조금만 정색하고 말해도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데, 나를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해 기분이 금세 상해버린다. 부모의 불안이 이처럼 불안한 사람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니 부당하게 아이에게 절대 화내지 마라. 때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부당하게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은 기본적으로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p.79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받아주고 이렇게 친절한 설명을 해주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사람을 존중하고 있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부모의 이런 행동은 아이에게 '나는 너의 존재를 존중하고, 나는 너에게 감정적인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뜻을 전하는 것이다. 나는 엄마들에게 종종 아이에게 눈을 흘기지 말고 아이에게 소리 지르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것이 아이를 존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p.80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들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첫 단계는 아이가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것을 인정하고, 그것이 문제가 있거나 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고 저마다 장점이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을 뿐이다. 소극적이면 소극적인 대로, 적극적이면 적극적인 대로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말해준다. 아이에게 "네가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면 너는 사람을 사귀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야"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인정한다. 더불어 엄마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도 좋다. "엄마도 어릴 때는 너처럼 좀 그런 면이 있었는데, 이렇게 하니까 친구 사귀는 게 좀 낫더라"라며 자신의 성공적인 경험을 알려준다. 아이에게 친구를 빨리 못 사귀고 소극적인 것이 문제고 반드시 개선해야 할 점이라는 식으로는 말해서는 안 된다. 그 점이 너무 부각되면 아이가 노력한답시고 친구를 빨리 사귀려고 과한 행동을 해버린다. 원래는 굉장히 내성적이지만 명랑한 척하며 친구를 사귄다. 자신의 문제점을 극복해보려고 하는 행동이지만 결국 자기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결과가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며칠 만에 사귄 친구는 대개 적극적이기 때문에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와 오래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같이 있어도 기질이 같지 않기 때문에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는 오히려 더 외로워진다.

'너와 맞는 친구를 찾기 위해 노력은 하지만 지나치게 애쓸 것까지는 없다'는 조언이 필요하다. -p.167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누군가 그때의 어린 나에게 '친구를 찾기 위해 지나치게 애쓸 것까지는 없다'라고 말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오은영 박사의 말처럼 나는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 학창 시절을 보냈다.

언젠가 아이가 "엄마는 학교 다닐 때 친구 많았어?" 하고 물어보았다. "아니, 근데 친구는 많다고 좋은 거 아니야. 정말 마음이 맞고 좋은 친구 한두 명만 있어도 충분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억지로 마음이 맞지 않는 친구랑 놀 필요는 없어. 친구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아"라고 덧붙여주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좋은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아이가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