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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엄마/엄마의 책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도서관의 책들을 구경하다가 본 무라카미 하루키의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채소의 기분이란 어떤 걸까?

"꿈을 좇지 않는 인생이란 채소나 다름없다"라고 누군가 단호히 말하면 무심결에 "그런가?" 하게 될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채소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채소마다 마음이 있고 사정이 있다.

하나하나의 채소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면, 지금까지 인간으로서의 내 인생이란 대체 무엇이었을까 하고 무심코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그럴 때도 있다).
-p.15

 


나는 하루키의 단편과 에세이를 좋아한다. 별거 아닌 것들(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특별하게(그러나 무덤덤하게 표현하는) 쓰는 그의 반짝반짝하는 글들이 참 좋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잡념이 사라진다. 그런 기분이 든다.
지금 내 고민들이 별거 아닌듯한 기분이.

 

 

"이제 아줌마가 다 됐네" 라는 말,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본업은 소설가요, 내가 쓰는 에세이는 기본적으로 '맥주 회사가 만드는 우롱차'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세상에는 "나는 맥주를 못 마셔서 우롱차밖에 안 마셔"하는 사람도 많으니 물론 적당히 쓸 수는 없죠.

우롱차를 만들려면 일본에서 제일 맛있는 우롱차를 목표로 만들겠다는 것은 글 쓰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마음가짐입니다. 그러나 뭐,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나는 어깨 힘 빼고 비교적 편안하게 이 일련의 글을 썼습니다.

어깨 힘 빼고 편안하게 읽어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p.6/7 (책의 첫머리에서)

 

 


네. 저는 정말 편안하게 읽었습니다.
소파에 기대앉아 커피를 홀짝이면서 어깨 힘 빼고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맛 좋은 우롱차를 마신 기분입니다.

 


처음에 쓴 두 개의 단편소설 <중국행 슬로 보트><가난한 아주머니 이야기>는 둘 다 제목을 먼저 붙였다.
그 뒤에 이런 제목으로 단편소설을 쓰면 어떤 얘기가 될까 하고 생각했다.
보통은 순서가 반대다. 먼저 이야기가 있고 나중에 제목이 붙는다. 내 경우는 그렇지 않고 먼저 틀을 만든다.
그리고 '음, 이 틀 속에 어떤 얘기가 들어갈까?'를 생각한다.
왜 그랬는가 하면, 그 당시 쓰고 싶은 것이 특별히 없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쓰고 싶은데 쓸 만한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인생 경험도 아직 부족했고, 그래서 먼저 제목을 지어놓고 그 제목에 맞는 얘기를 어디선가 끌어왔다. 즉 '말장난'에서 소설을 풀어내려고 한 것이었다.
그런 건 문학적으로 성실하지 못한 태도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그렇게 해서 글을 쓰는 동안 저절로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것'이 점점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p.38/39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많은 단편소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편소설.
<중국행 슬로 보트> 그리고 <가난한 숙모 이야기> (내가 읽었던 책에는 '가난한 숙모 이야기'라고 되어있다)
소설은 쓰고 싶은데 쓸 만한 것이 생각나지 않아서 제목을 지어놓고 그 제목에 맞는 얘기를 끌어왔다니...
그 이야기들이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들 중 하나입니다!!

 

분명 다 읽었는데 기억 나는 건 <중국행 슬로보트>와 <가난한 숙모 이야기>뿐이다.




거의 아무도 그녀를 소개하지 않고, 거의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뭐라 한마디 해달라는 요청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낡은 우유병처럼 테이블 앞에 반듯하게 앉아 있을 뿐이다.

그녀는 기운 없이 꺼질 듯한 소리를 내며 콘소메 수프를 먹고, 생선 포크로 샐러드를 먹고, 강낭콩을 뜨다 실수를 하고, 마지막에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스푼이 모자라 당황한다.

그녀가 보낸 선물은 운이 좋으면 벽장 속에 처박혀 있을 것이고, 운이 나쁘면 이사할 때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별 볼 일 없는 트로피 따위와 함께 버려졌을 것이다.
이따금 꺼내보는 결혼 앨범에도 그녀가 찍혀 있기는 할 테지만, 그 모습은 그리 험상궂지 않은 익사체처럼 애처롭다.
여기 찍혀 있는 이 여자는 누구지? 봐, 여기 두 번째 줄에 안경 낀....
아아, 별사람 아니야,라고 젊은 남편은 대답한다, 그냥 가난한 숙모.
그녀에게는 이름이 없다. 그냥 가난한 숙모, 그뿐이다.
- 가난한 숙모 이야기 중에서

 

 

 



그리고 그 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혼자 벤치에 앉은 채 마지막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 빈 갑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시계는 이미 열두 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내가 그 밤에 저지른 두 번째 실수를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아홉 시간이나 지나서의 일이었다.

그것은 너무도 어처구니없고, 너무도 치명적인 실수였다.

나는 빈 담뱃갑과 함께 그녀의 전화번호를 적어 놓은 성냥갑까지 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힘닿는 한 열심히 찾아다녔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의 명부에도 전화번호부에도, 그녀의 전화번호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대학의 학생과에도 문의를 해보았지만 역시 허사였다. 그 이후 그녀와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녀가 내가 만난 두 번째 중국인이다.
- 중국행 슬로 보트 중에서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를 읽고, 이 책에 대한 글을 쓰다 그만 다른 소설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네요.
오랜만에 <중국행 슬로 보트>를 다시 읽고 싶어 졌습니다.
하지만 요 며칠, 무라카미씨의 에세이를 읽고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그렇기에 오래전 읽었던 단편소설의 이야기가 떠오르고 또 읽고 싶어진게 아닐까 싶습니다.
마음이 복잡하면 이도 저도 다 귀찮아지기 마련인데 말이죠.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