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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엄마/아이의 책

힐드리드 할머니와 밤

 

밤을 싫어하는 힐드리드 할머니가 밤을 몰아내기 위해 하는 갖가지 행동들이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힐드리드 할머니는 밤을 빗자루로 쓸어내기도 하고 자루에 똘똘 말아 넣어도 보고, 큰 가마솥에 펄펄 끓여도 본다. 

그래도 밤은 여전히 뽀얗게 쌓인 먼지처럼 그대로이다.

힐드리드 할머니는 밤을 가위로 찰칵찰칵 자르기도 하고 침대 속에 쿡쿡 쑤셔 넣기도 한다. 

힐드리드 할머니는 밤에게 자장가도 불러주고 우유도 한 사발 준다.

 

귀찮은 듯 훅 해치우려다 안되니 완력도 행사해보고 그래도 안되니 회유책을 쓰는 것일까?

나는 밤을 싫어하는 힐드리드 할머니의 밤 쫓아내기 소동(?)을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어쩌면 이렇게 시적인 표현으로 재미있게 써 내려갔을까 감탄했다.

 

힐드리드 할머니는 박쥐, 올빼미, 두더지, 들쥐, 나방, 별, 그림자를 싫어한다.

그리고 잠자는 것도 싫어한다. 박쥐, 올빼미, 두더지 등은 아마도 이 마지막 "잠자는 것도 싫어한다"라는 말을 하기 위한 포석이 아닐까 싶다.

힐드리드 할머니가 밤을 싫어하는 건 사실 잠자는 게 싫기 때문 아닐까? 마치 아이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밤을 쫓아낸다는 명목으로 밤새 밤을 어르고 달래고 하는 게 아닐까?

아이들이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자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밤새 밤 하고 싸우느라 지친 힐드리드 할머니는 결국 잠이 들어버렸고, 환한 낮을 볼 수 없게 된다.

할머니가 잠에서 깨어날 땐 또다시 밤이 되겠지.

 

<작품에 대하여> 

그림책 「힐드리드 할머니와 밤」은 밤과 싸우는, 어리석고 엉뚱한 힐드리드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이 얼마나 어리석고 한심한 것인지를 잘 보여 준다. 즐거운 유머로 가득한 엉뚱한 할머니의 행동은 책을 보는 아이들에게 밤에 일찍 잠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유쾌하게 가르쳐 준다. 할머니의 모습은 밤에 잠을 자기 싫어하는 아이들, 바로 그 모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작품에 대하여> 부분을 읽으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의 어리석음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할머니의 모습에서 밤에 자기 싫어하는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으니 내게도 작가의 의도가 어느 정도 받아들여진 게 아닐까 싶다.

 

 

힐드리드 할머니는 빗자루로 밤을 싹싹 쓸고, 북북 문지르고, 박박 비비고, 탁탁 털어 냈습니다. 

하지만 창 밖을 내다볼 때마다, 밤은 서까래 뒤에 뽀얗게 쌓인 먼지처럼 여전히 거기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힐드리드 할머니는 밤을 자루에 똘똘 말아 넣어도 보고, 꽉꽉 채워 넣어도 보고, 끙끙 밀어 넣어도 보고, 꾹꾹 눌러 담아도 보고, 까만 그림자에게 살금살금 다가가 보기도 했습니다.

 

힐드리드 할머니는 밤을 국자로 퍼 내고, 휘휘 젓고, 바글바글 끓이고, 부글부글 거품을 내고, 맛도 보고, 태워도 보았습니다.

 

힐드리드 할머니는 밤을 가위로 찰칵찰칵 잘랐습니다. 양털을 깎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구름 몇 조각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촛불을 켜고 노래를 불러 밤을 떠나보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밤은 밖에서 콩콩 뛰어다녔습니다.

 

밤을 콱콱 짓밟고, 쾅쾅 구르고, 팡팡 때리고, 꾹꾹 파묻으려고 무덤도 팠습니다.

 

퉤- 하고 침도 뱉었습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표현이 너무 시(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밤'을 '헤어진 연인' 또는 '불안과 고민'으로 바꾸어도 손색없을 것 같았다.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을 싹싹 쓸고, 털어내도 그 추억은 잊히지 않고 뽀얗게 쌓인 먼지처럼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추억을 조각조각 가위로 잘라내어도 결국 아픈 건 잘려진 내 마음.

결국 퉤! 하고 침을 뱉고 돌아서 버리는 그런 추억.

 

불안을 쓸어내고 털어내려고 해도 꾹꾹 파묻으려 해도 뽀얗게 쌓인 먼지처럼 그대로 있는 것.

 

좋은 책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같은 책을 읽어도 나이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것.

 

재미있는 어휘들과 흑백의 펜화가 알록달록한 색채의 그림보다 훨씬 더 책의 내용을 몰입감 있게 만든다.

잠자기 싫어하는 귀여운 꼬마가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주시길!!

 

아놀드 로벨 그림/첼리 두란 라이언 글/정대련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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