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T>라는 책을 읽고, 문득 나에게도 소중하게 간직해온 두 장의 T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 졌다.
무라카미씨는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서도 상당히 재미있고 통찰력 있는 글을 뽑아낸다.
가끔 그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갸우뚱할 때도 있다.
그는 나이가 불분명한 사람이다. 그의 글은 나이를 먹지 않는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솔직히 말하면 <무라카미 T>를 첫 장부터 정독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책에 실린 예쁜 T를 구경만 했다.
이 분, 정말 예쁘고 멋진 T가 많구나! 생각하면서.
그러다가 마음에 쏙 드는 T가 있거나, 끌리는 제목을 그저 손가는대로 읽었다.
무라카미씨가 R.E.M의 <Monster> 앨범을 좋아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그의 단편 <토니 타기타니>가 실은 마우이 섬 시골마을의 자선매장에서 산 티셔츠에 쓰여있는 어떤 사람의 이름을 보고 '토니 타기타니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하다가 쓴 소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무라카미 T>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다.
여하튼, 나도 아끼는 T가 있다. 입지도 못하고 색도 바랬지만 버리지 못하는 아주 오래된 T.
무라카미씨의 화려한 컬렉션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단 두장뿐인 티셔츠이지만.
첫 번째 T
2007년. 시모키타자와를 혼자 어슬렁어슬렁 걷다가 「ONE LOVE」라는 가게를 발견했다.
구경이나 해볼까? 하고 들어간 가게에서 주인아저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었다.
아저씨가 자체 제작했다는 T와 인디밴드의 CD와 이름 모를 시인의 시집을 한 권 샀다.
어째서 이 티셔츠가 소중한 걸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사서 단 한 번도 입지 않고 누렇게 색이 바래가는 티셔츠.
아마도 그날 가게 안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과 그때의 분위기와 내가 산 인디밴드의 난해한 음악이 어우러져서일지도.
아니면 티셔츠에 쓰여있는 「NO VIOLENCE NO WAR MAKE PEACE MAKE LOVE」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주인아저씨의 모토(라고 내게 말해주었었다)였다.
두 번째 T
아마도 2001년.
그러니까 20년이 된 티셔츠다.
구입한 시기가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마 그쯤이었을 거다.
소중하다고 하면서 언제 샀는지 기억도 못한다니!
그렇지만 명동의 한 가게에서 샀다는 것만은 또렷이 기억한다.
아주 작은 가게였는데, 아주 젊은 (당시의 나보다도 어려 보이는) 가게 주인이 자신이 직접 디자인하고 직접 스팽글을 달았다고 했다.
나는 그 옷가게의 옷들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독특한 디자인의 치마도 한벌 샀었는데, 왜 버렸을까?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이 티셔츠는 내가 가장 빛나던 순간을 함께 했다.
나와 함께 울고 웃고, 노래했다.
이 티셔츠에 스팽글을 달아주었던 그분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여전히 멋진 옷들을 만들고 있을까?
<무라카미 T>를 읽고 주절주절 적어본다.
책의 힘이란 이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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