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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인/이야기

무라카미 T ...그리고 나의 T에 대한 짧은 이야기 라는 책을 읽고, 문득 나에게도 소중하게 간직해온 두 장의 T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 졌다. 무라카미씨는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서도 상당히 재미있고 통찰력 있는 글을 뽑아낸다. 가끔 그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갸우뚱할 때도 있다. 그는 나이가 불분명한 사람이다. 그의 글은 나이를 먹지 않는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솔직히 말하면 를 첫 장부터 정독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책에 실린 예쁜 T를 구경만 했다. 이 분, 정말 예쁘고 멋진 T가 많구나! 생각하면서. 그러다가 마음에 쏙 드는 T가 있거나, 끌리는 제목을 그저 손가는대로 읽었다. 무라카미씨가 R.E.M의 앨범을 좋아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그의 단편 가 실은 마우이 섬 시골마을의 자선매장에서 산 티셔츠에 쓰여있는 어떤 사람의 이름을 .. 더보기
봉숭아 꽃물 들이기 해마다 이맘때 즈음, 아이의 손톱에 예쁜 봉숭아 꽃물을 들여준다.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기 위해 봄이 되면 봉숭아 꽃씨를 심는 것도 연례행사다. 어느 해는 꽃이 너무 적어서 다른 곳에서 꽃을 얻어 오기도 했고, 어느 해에는 집에서 키운 꽃으로도 충분해서 아이도 나도 남편도 온 가족이 다 함께 물들인 적도 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열 손가락 모두 봉숭아 꽃물을 들이곤 했다. 동네 곳곳에 지천으로 피어 난 봉숭아 꽃을 따다 집에서 곱게 빻아 손톱에 올리고는 행여라도 손톱에 올린 꽃이 떨어질까 봐 꽃잎을 감싼 비닐을 실로 꽁꽁 묶었었다. 진하고 예쁘게 꽃물이 들길 바라면서 손을 이불 밖으로 내어놓고는 잠을 잤었다. 아침이면 손톱은 물론 손가락 마디까지 붉은 물이 들었던 기억. 그 오래전 기억으로 나는 내.. 더보기
여름방학에 뭘 하면 좋을까? 아이의 여름방학이 한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작년엔 학교를 가는 둥 마는 둥 했으니, 방학이라는 게 따로 없는 느낌이었다. 그냥 일년 내내 방학 같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번 여름방학이야말로 아이가 처음 맞는 '제대로' 된 방학이다. 여름방학 기간은 에누리 없이 딱 한 달이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나는 학창시절에 단 한 번도 방학을 '알차게' 보내본 적이 없다. 어떻게 보내야 할지도 몰랐고, 챙겨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아이의 방학도 어떻게 하면 알차게 보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유치원 때는 방학이라고 해봐야 고작 일주일 뿐이어서 딱히 어떤 계획을 세우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달 앞으로 다가온 학교 방학이 막막하기만 하다. 아이가 처음 맞는 여름방학.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 더보기
운명은 바뀔 수 있을까? 언론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67퍼센트가량이 일 년에 한 번 이상 철학관이나 점집을 찾는다고 한다. - 「사주명리 인문학 p.6」 나는 일 년에 한 번 이상 철학관이나 점집을 찾는 67퍼센트가량의 사람 중에 한 명이다. 갈 때마다 비슷비슷한 뻔한 얘기를 듣지만 그럼에도 해마다 점집을 찾게 되는 이유는 불안 때문이다. 나는 원래 불안감이 높은 사람이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희망적인 얘기를 듣고 싶다. 안 좋은 이야기들도 듣게 되지만, 부적을 써야 한다거나 굿을 해야 한다거나 하는 말은 듣지 않는다. 왜냐하면 애당초 그런 말을 하는 곳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안좋은 일이 있더라도 (있을 것 같더라도) 조심하면 된다는 조언을 듣는다. 그리고 잘 될 거라는 말을 들으면 조금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된다. 나는 점집을.. 더보기
남들이 읽고 싶어하는 글을 쓰고 싶으니까 나는 글이라는 걸 써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글을 쓰고 싶어하는 걸 보면 뻔뻔한 건지 무모한 건지 잘 모르겠다. 극본도 써보고, 소설도 써보고 시도 써보았다. 예전에는 노래 가사도 곧잘 끄적였다. 되지도 않는 기타를 치면서 어설프게 멜로디를 만들고 노랫말을 지어 붙이곤 했다. 그럼에도 나는 글이라는 걸 써본 적이 거의 없다. 수많은 글의 종류들 나는 어떤 종류의 글을 쓸 수 있을까? 음악에도 여러 장르가 있듯이 글에도 여러 장르가 있다. 나는 어떤 장르의 글이 어울리는 사람일까? 음악 취향도 때때로 바뀌듯 글의 취향도 때때로 변한다.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다. 음악도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듣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글도 그렇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어떤 글을 .. 더보기
아이가 만든 <우리 가족 조사책> 아이가 지난주 금요일 학교 여름 수업 시간에 '우리 가족 이야기'를 주제로 작은 책자를 만들어 왔다. 「00이네 가족 이야기」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질문이 나오고 그에 대한 답변을 아이가 적었다. 우리 가족이 쉴 때 이것은 꼭 한다. 우리 가족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우리 가족이 모두 모이는 때는? 우리 가족들이 좋아하는 취미는? 가족 중 재미있는 사람은? 가족 중 가장 힘이 센 사람은? 자랑스러운 우리 가족 00을 소개합니다. 이름 나이 직업 잘하는 것 특징 우리 가족을 칭찬합니다. - 이름과 이유 우리 가족 최고의 나들이 장소 1위, 2위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1, 2위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 1,2 위 가족이란 00 입니다. 왜냐하면 ( )이기 때문입니다. 이상이 작은 책자.. 더보기
글쓰기의 고단함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책 구입 시기: 2019년 7월 아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뭔가 좀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글이 쓰고 싶어 졌다. 그래서 이 책을 샀다. 하지만 나는 책을 사서 열심히 읽기만 했을 뿐이다. 10여 년 전 한국방송작가교육원에 다녔던 적이 있다. 처음 기초반으로 들어갈 때는 면접을 봐야 한다. 면접 대기실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글을 써본 적도 없었고, 배워본 적도 없었다. 어쩌면 그런 백지상태였기 때문에 도전해볼 수 있었던 것도 같다. 그때 나의 면접관은 드라마 의 작가였다. 몇 가지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건,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뭔가요?"라는 질문이었다. 세 가지만 말해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에밀레 브론테의 폭풍의 .. 더보기
쓸쓸하지만 쓸쓸하지 않은,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나의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그의 글을 처음 읽은 건 스무 살이 되던 해였던 걸로 기억한다. 집에 꽂혀 있던 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그 책의 원제가 이라는 걸 알게 된 건 그 후로 꽤 긴 시간이 지난 후였다. 아무튼 나는 상실의 시대를 엄청 지루해하면서, 그래도 읽기 시작했으니 끝까지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읽었던 기억이 난다. 책의 내용은 다 잊어버렸다. 단지, 내가 억지로 끝까지 읽었다는 것만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하루키의 책을 그 뒤로 읽지 않았다. 첫인상이 그닥 좋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만약 상실의 시대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그 후로도 계속해서 많은 책을 읽었겠지만 말이다) 다시 하루키의 글을 읽게 된 건, 스물 다섯살 즈음이었던가. 누군가 내게 라는 하루키의 단편소설을 이야기해 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