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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인/이야기

아이가 만든 <우리 가족 조사책>

아이가 지난주 금요일 학교 여름 수업 시간에 '우리 가족 이야기'를 주제로 작은 책자를 만들어 왔다.
「00이네 가족 이야기」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질문이 나오고 그에 대한 답변을 아이가 적었다.

우리 가족이 쉴 때 이것은 꼭 한다.
우리 가족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우리 가족이 모두 모이는 때는?
우리 가족들이 좋아하는 취미는?
가족 중 재미있는 사람은?
가족 중 가장 힘이 센 사람은?
자랑스러운 우리 가족 00을 소개합니다.

  1. 이름
  2. 나이
  3. 직업
  4. 잘하는 것
  5. 특징

우리 가족을 칭찬합니다.
- 이름과 이유

우리 가족 최고의 나들이 장소 1위, 2위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1, 2위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 1,2 위

가족이란 00 입니다.
왜냐하면 ( )이기 때문입니다.

 

 

이상이 작은 책자의 내용이다.
아이가 적은 답변에 혼자 미소 짓기도 하고, 좀 더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오후에 담임선생님께서 하이클래스에 남긴 메모를 보니 '휴대폰 하는 것'과 '소파에 누워있는 것'을 우리 가족이 쉴 때 꼭 하는 것으로 쓴 친구들이 많았다고 했다.
또,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취미와 최고의 나들이 장소 적는 것을 어려워하는 친구들도 많았다고 하셨다.
아이들의 눈에 비칠 엄마 아빠의 모습이 그려진다.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하는 모습이 익숙해진다면 슬플 것 같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되도록 이면 휴대폰을 멀리 두려고 한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손이 가게 되기 때문에 물리적 거리를 둔다.
시간을 볼 때 시계를 두고 휴대폰으로 보게 되고, 그러다가 누군가에게 온 메시지를 보고, 답장을 하고, 인터넷을 보게 되고, 휴대폰을 손에 쥐게 되면 뭔가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아이와 함께 있을 때에는 휴대폰을 멀리 두려고 한다.
그래서인지 다행히 아이는 휴대폰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나들이 장소로 동네 뒷산과 '집'을 적었다.
나들이 장소가 집이라니.
그러고 보니 요즘 아이와 산책을 나선 게 언제였던가 반성하게 된다.
생각해보니 우리의 산책길은 기껏해야 학원가는 길이 전부였다.
그것도 늘 시간에 쫓기며 서둘러 걸어간다.
어느새 장미가 시들어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내년에 또 <우리 가족 조사책>을 만든다면, 그때 아이는 어떤 답변을 적을까?
앞으로도 계속 가족이란 '행복'이라고 적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가족 나들이 장소로 '집'이 아닌 다른 곳을 적을 수 있도록, 아이와 함께 우리 가족의 즐거운 산책길을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