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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인/이야기

글쓰기의 고단함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책 구입 시기: 2019년 7월

아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뭔가 좀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글이 쓰고 싶어 졌다. 그래서 이 책을 샀다.
하지만 나는 책을 사서 열심히 읽기만 했을 뿐이다.

 

 

 


10여 년 전 한국방송작가교육원에 다녔던 적이 있다.
처음 기초반으로 들어갈 때는 면접을 봐야 한다.
면접 대기실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글을 써본 적도 없었고, 배워본 적도 없었다.

어쩌면 그런 백지상태였기 때문에 도전해볼 수 있었던 것도 같다.


그때 나의 면접관은 드라마 <다모>의 작가였다.
몇 가지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건,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뭔가요?"라는 질문이었다.
세 가지만 말해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에밀레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말했던 건 확실히 기억한다.

 

 

 


아마도 다른 두 개는 면접관이 좋아할 만한 소설을 즉흥적으로 생각해서 대답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서 잊힌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로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아니기 때문에.
어쨌든 나는 운 좋게도 기초반에 합격했고, 6개월간의 기초반 수업을 듣게 되었다.


나의 첫 선생님은 드라마 작가 김윤영 선생님이셨다.
당시에도 너무 좋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정말 좋은 선생님께 좋은 수업을 받은 운 좋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찌어찌 나는 방송작가 교육원 전문반까지 올라갔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기초반→연수반→전문반→창작반의 순서로 올라간다. 창작반은 정말 소수의 인원만을 뽑고 교육비를 내지 않는다. 그리고 창작반 작품집을 내준다. 교육원의 수업은 오전반, 오후반이 있는데 나는 당시 오후반을 들었었다. 오후반의 경우 전문반은 방송국 드라마 PD가 선생님으로 오신다. 작가 선생님께 배울 때와는 또 다른 시선으로 드라마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창작반도 떨어지고, 공모전에도 떨어지고 그러면서 임신과 출산을 맞게 되면서 글쓰기는 내 삶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자취를 감추었던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손가락도 머리도 다 굳어버렸는데, 대본을 쓸 때 신 넘버는 어떻게 입력했었는지조차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는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2년 전에도, 1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이 책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꺼냈다.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은 긴장을 풀고, 몸과 마음 전체로 이 책을 흡수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읽는 데에서 끝내지 말라. 부디 써라.

그리고 자신을 믿어라. 자신의 요구가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당신이 이 책을 쓰임새 있게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p.18

서문에 나오는 작가의 말처럼 나는 이제 이 책을 쓰임새 있게 만들고 싶다.
나 자신을 믿고, 쓰고 싶다.

글쓰기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만약 당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찾아낸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든지, 글 쓰는 행위를 부정하기보다는 자신을 더 깊이 불사르며 글쓰기 속으로 몰입하게 해 줄 것이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또는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어 하는가?"라고 묻되, 깊이 생각하지는 말라.
그 대답은 펜을 잡고, 종이 위에 분명하게, 단정적으로 진술하라. 모든 진술이 백 퍼센트 진실일 필요는 없으며, 하나의 문장이 나머지 문장들과 모순되어도 상관없다. 아니, 거짓말로 꾸며서라도 계속 끌고 가보라. 설령 글을 왜 쓰려는 것인지 모른다 해도 글을 쓰는 이유를 아는 것처럼 대답해 보라. -p.192

 

 

 

 

이 책은 작법서가 아니다.
글을 쓰려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와 마음가짐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어떻게 하면 글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론이다.

사실 글이라는 게 쓰고 싶으면서도 또 한없이 게으름을 피우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글감은 콩알만큼도 떠오르지 않고, 마치 시험기간에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 점수 걱정을 하는 학생 같은 기분이다.
그럴 때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러다 보면 왠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면 그 기분으로 모니터 앞에 앉는다.
그러다가 또 마음이 시들시들해지면 다시 책을 꺼내 읽어본다.
글쓰기는 고단한 일이다. 그러니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닐까?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고.